J(장 폴 사르트르)
V(버지니아 울프)
A(알랭 드 보통)
P(패티 스미스)
J : 나는 펜을 들고 과거, 현재, 그리고 세계에 관한 그 고찰에 견뎌 낼 수가 없었다. 나는 오직 한 가지, 즉 내가 저작을 하도록 가만 놔두어 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시선이 흰 종이 더미 위에 떨어졌을 때, 나는 그 모습에 사로잡혀 펜을 든 채로 눈이 부신 그 종이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 종이는 무자비하고 뚜렷했으며, 얼마나 그 종이는 역력했을까? 거기에는 현재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지금 막 쓴 글씨들이 아직 안 말랐지만 그것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가장 불길한 소문을 퍼뜨리는 데에 조심을 하였다.' 이 구절은 내가 생각해 본 것이다. 그 구절이 처음에는 다소 나 자신이기도 했다. 현재 그 구절은 종이 속에 적혀서, 나와는 반대되는 블록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미 그것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그 구절은 거기, 내 앞에 있었다. 쓴 사람의 표적을 찾으려 해도 그것은 허사였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것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쓴 것이 나였는지, 과연 '나'였는지 확실하지가 않다. 이제 글씨들이 반짝거리지 않고, 그것들은 말랐다. 그것도 역시 사라졌다. 순간적인 광채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나의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현재뿐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제각기 현재 속에 처박힌 가볍고 튼튼한 가구, 즉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과 나 자신이었다.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현존하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치 않았다. 사물 속에도, 나의 생각 속에도 없었다. 확실히 오래 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도주해 버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것이 나의 능력 범위 밖으로 틀어박힌 데 불과하다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은퇴한 것에 불과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존재양식이었으며, 휴가의 상태, 비활동의 상태였다. 각 건은 제각기의 역할이 끝났을 때, 스스로 상자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서 명예로운 사건이 되는 것이었다. 그만큼 무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알았다.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사물인 것이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V : '실재'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무언가 아주 일정치 않고, 의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때로는 먼지투성이 길에서, 또는 거리에 떨어진 신문 조각에서, 혹은 햇빛 속의 수선화에서 발견하게 돼요 방 안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비추는가 하면, 어떤 우연한 말을 명심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것은 별빛 아래 집으로 걸어가는 이를 압도하며, 침묵의 세계를 말의 세계보다 더 사실적인 것으로 만들어요. 또한 왁자지껄한 피카딜리의 버스 안에도 존재해요. 때로는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본성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없는 형체들 속에도 머무는 듯해요. 그러나 건드리는 건 무엇이든지 간에 고정되며 영원해져요. 그것이야말로 하루의 껍질이 울타리 밖으로 던져질 때 남는 것이며, 지나간 시간과 우리의 사랑, 증오 뒤에 남는 것이에요. 이제 작가는 다른 사람들보다 이 실재의 현존 속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나는 생각해요. 실재를 찾아내고 수집하여 나머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일은 작가의 몫이에요. 리어 왕, 에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그렇게 추론해보았어요. 이러한 책들을 읽는 건 감각기관을 덮어버린 막을 제거하는 신기한 수술을 받는 것과 같아서, 다 읽은 후에는 보다 강렬하게 볼 수 있어요. 세상이 덮개를 벗어내고 더 강렬한 생을 부여한 듯해요.
J : 한 권의 책. 한 권의 소설. 그 소설을 읽고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그것을 쓴 사람은 앙투안 로캉탱이다. 그는 카페에 빈들빈들 다니던 머리털이 붉은 놈이었다'라고. 그리고 그들은 내가 그 흑인 여자를 생각하듯이 나의 생활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마치 무슨 귀중한 반전설적인 일처럼 말이다. 한 권의 책. 물론 처음에는 그것이 지루하고 피곤한 일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막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그것이 남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그 책의 조그만 수명이 나의 과거 위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마도 나는 그 책을 통해서, 나의 생활을 아무 혐오감 없이 회상할 수 있으리라. 아마도 그 어느 날, 몸을 오그리고 내가 탈 기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간, 이 음울한 시간을 역력히 회상하면서, 나는 아마 가슴이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모든 것이 시작한 것은 그날, 그 시간이다.'라고 말할 때가 오리라. 그리고 나는-과거에서, 과거에 있어서만- 나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V : 결과적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사소하고, 아무리 방대한 주제일지라도 망설이지 말고 온갖 종류의 책들을 써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무슨 수를 써서든지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해보고 책에 관해 몽상하며 길모퉁이를 배회하고, 강 속 깊이 사색의 낚싯줄을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자신만의 돈을 여러분이 소유하게 되기를 희망해요. 여러분을 픽션에만 한정시키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나를 기쁘게 하고 싶다면-나와 같은 이들이 수천 명 있어요- 여행과 모험, 연구와 학술, 역사와 전기, 비평과 철학, 그리고 과학에 관한 책들을 쓸 거예요. 그렇게 하면 픽션의 기법에 확실히 이득이 될 거예요. 책들은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니까요. 픽션은 시와 철학과 꼭 붙어 서 있으면 훨씬 나아지지요. 게다가 사포와 레이디 무라사키, 에밀리 브론테와 같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창작자일 뿐 아니라 후계자였으며,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습관을 가졌기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시의 전주곡으로라도 그러한 여러분의 활동은 매우 소중해요. …… 그동안의 기록들을 돌아보고 내 일련의 사고를 비판해볼 때, 나의 동기가 다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논평과 산만함 사이로 확신-또는 본능일까요-이 흐르고 있어요. 좋은 책은 바람직하며, 좋은 작가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인간적인 타락상을 보여줄지라도 여전히 좋은 인간이라는 사실이요.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더 많은 책을 쓰라고 권할 때 나는 여러분 자신을 위하고 세계 전체를 위하는 일을 하라고 촉구하는 셈이에요.
A :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자신의 독자이다. 저자의 작품은 만약 그 책이 아니었으면 독자가 결코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것을 스스로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시력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속에서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진실성에 대한 증명이다.
일단 우리가 그 책을 덮고 우리 자신의 삶을 재개할 때가 되면, 혹시 저자가 우리와 함께 있었더라면 분명히 반응했을 법한 바로 그런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은 마치 의식 속을 떠돌아다니는 특정한 대상을 잡아내기 위해서 주파수가 새로 맞춰진 레이더가 된다. 그 효과는 이제껏 우리가 조용하다고만 생각했던 방 안으로 라디오를 가져오는 것과도 비슷하리라.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그 방 안의 조용함이란 다만 특정한 주파수에만 존재했음을 깨닫게 되고, 실제로는 우크라이나의 방송국이나 콜택시 회사의 야간 잡담이 줄곧 우리와 한방을 써왔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관심은 하늘의 어스름으로 얼굴의 변화 가능성으로, 친구의 위선으로, 심지어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거기에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어떤 상황으로 향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를 민감하게 만들 것이며, 그 책 자체의 발달된 감수성을 보여주는 증거들로 우리는 잠자는 안테나를 자극할 것이다.
프루스트와 러스킨의 만남은 독서의 유익함을 예증해 준다. "내 눈앞에서 이 우주가 갑자기 무한한 가치를 되찾았다." 프루스트는 훗날 이렇게 설명했다. 왜냐하면 러스킨의 눈에 우주는 그런 가치를 가졌기 때문이며, 또한 그는 자신이 받은 인상을 말로 바꾸는 데에는 천재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러스킨은 프루스트가 일찍이 느꼈지만 차마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표현했다. 프루스트는 자신은 단지 느낄 수만 있을 뿐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경험들이, 러스킨에게서는 언어로 세워지고 아름답게 조립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그만의 영역을 가질 수 있으며, 그녀는 그녀만의 갈겨쓴 글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울증과 자기혐오에서 쾌활한 도전으로 가는 길은 한 사람의 업적이 또 한 사람의 업적을 반드시 무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 제아무리 순간적으로는 마치 정말 그런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뭔가 할 일이 항상 남아 있게 마련이라는 점에 대한 점차적인 인식을 암시한다. 프루스트는 여러 가지를 잘 표현했지만, 독립적인 생각과 소설의 역사가 그와 함께 완전히 중단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그의 책 이후에 반드시 침묵이 뒤따라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위한 공간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령 댈러웨이 부인, 평범한 독자, 자기만의 방을 위한 그리고 특히 이 맥락에서 이 책들이 상징하는 바-즉 자기만의 지각-을 위한 공간 말이다.
P : Maybe I could catch up with him and hitch myself a ride. We could travel the desert together, no agent required. -I love you, I whispered to all, to none. - Love not lightly, I heard him say. And then I walked out, straight through the twilight, treading the beaten earth. There were no dust clouds, no signs of anyone, but I paid no mind. I was my own lucky hand of solitaire. The desert landscape unchanging : a long, unwinding scroll that I would one day amuse myself by filling. I'm going to remember everything and then I'm going to write it all down. An aria to a coat. A requiem for a cafe. That's what I was thinking, in my dream, looking down at my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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